[김재후의 'LPEF']제2의 반도체' 배터리사들의 자금조달 유감

입력 2022-03-17 05:50  

전기차 배터리 회사인 SK온의 프리IPO(상장전 지분투자) 과정을 보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현재 진행중인 이 자본유치엔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블랙록과 싱가포르투자청(GIC), 사우디아라비아국부펀드(PIF) 등 세계 굴지의 투자자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4조원 규모로 알려진 대규모 자금 조달에 그러나 한국계 투자사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이런 배경엔 SK그룹의 성향이 있다는 게 PEF 업계의 말입니다. SK그룹은 그동안 많은 자금을 조달할 때마다 해외 PEF를 선호했습니다. SK온은 이번 유치에 칼라일그룹 TPG KKR 등 해외 PEF 운용사들에만 티저레터를 발송했고, 지난해 SK E&S가 2조4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할 때에도 외국 기관투자가들만 초청했습니다.
SK그룹은 해외 투자사만 좋아해
SK그룹 계열사들은 조 단위의 대규모 자금을 댈 수 있는 곳이 외국계라는 이유를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MBK파트너스는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이고, 국민연금은 세계 3대 연기금이며, IMM이나 스틱 등 국내에서 규모가 큰 PEF도 많습니다. 어차피 PEF에 돈을 대는 LP(큰손·출자자)는 사모펀드의 국적과 상관없이 비슷할 거여서 설득력은 떨어집니다.

SK온이 해외 투자자를 선호하는 이유로 또 들은 건 "SK온의 사업무대가 주로 해외라는 점"입니다. 해외에서 많은 활동을 하게 될 배터리회사인만큼 해외 투자자의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싶다는 설명입니다.

SK온이 설명하듯, SK온은 해외에서 주로 활동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테슬라가 세계 전기차 시장을 잡아먹던 몇년 전부터 한국의 배터리 산업을 얘기할 때마다 "제2의 반도체"란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LG화학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세계 시장에서 잘 나가면서 한국에 반도체 외에 또 하나의 미래 먹거리가 생긴다는 의미였습니다.
배터리는 다른 의미의 '제2의 반도체'
그렇다면 한국에서 배터리가 '제2의 반도체'가 될 수 있을까요. 산업의 성장성만 보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면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국내 투자나 일자리 창출 등을 따져보면 말이죠.

반도체는 국내에 투자를 많이 합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가 잘 나가자 국내에 공장을 늘리고 대규모 투자를 했습니다. 20조원 규모로 투자하는 평택이 그렇고, 동탄과 천안이 그랬고, 수원이 그랬습니다. 삼성은 2023년까지 3년간 반도체 등 주요 전략 사업에 240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는데, 이 중 180조원은 국내에 투자될 자금입니다. SK하이닉스도 이천과 청주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할 계획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나서면 1~4차 밴더들인 관련 기업들도 한국에 공장을 짓고 설비를 늘립니다. 반도체는 기술집약 산업이어서 중국이나 인도 등에 지으면 기술 유출 우려가 크고, 질량과 부피가 적어 비행기로 수출이 가능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반도체가 잘 되면 국내에 일자리와 돈이 많아집니다.

배터리는 어떨까요. 일단 배터리는 무겁습니다. 전기자동차의 4분의1이 배터리 무게입니다. 기술 유출 우려도 반도체보다는 덜합니다. 무겁기에 배터리공장은 글로벌 자동차 공장 옆에 공장을 지어야 경쟁력이 생깁니다. 국내엔 1998년 전북 완주에 현대차가 공장을 지은 이후 신규 공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온은 상장으로 끌어들인 돈이나 프리IPO로 유치한 자금으로 공장을 해외에 대거 짓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LG엔솔은 지난해 150GWh였던 생산 설비 규모를 25년까지 430GWh로 늘리겠다고 했고, SK온도 같은 기간 40GWh에서 220GWh로 5배 이상 확장하겠다고 발표한 상태입니다. 미국과 중국 독일 폴란드 등에서 하루걸러 대규모 투자 발표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현대차 기아차의 해외공장과 GM 포드 폭스바겐 등의 공장이 있는 곳입니다.

해외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면, 국내엔 일자리도 요원합니다. 연구인력이나 해외주재 인력 등이 전부일 것입니다. 연관 산업에 대한 효과도 적습니다. 배터리 공장이 해외에 생기면, 전기차 배터리에 핵심 요소인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공장도 배터리 공장 인근에 생겨야 합니다. 바로 공급해야 하니까요. 배터리 부품사들도 최근 국내 증시에 상장하거나 프리IPO를 하며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배터리 산업의 발전으로 국내에 남게 되는 건 자본 이득 뿐입니다. 큰 성장이 기대되는 배터리산업의 열매를 맛 보려면, 취직할 수도 공장옆에 식당을 열 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성장산업에 투자할 기회밖에 남지 않는 것입니다. LG엔솔은 LG화학에서 물적분할 후 한국 코스피 시장에 상장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나마 국내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을 받았습니다. 이후 주가가 어떻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자본이득을 취할 수 있는 '기회'는 있었던 셈입니다.

반면 SK온은 그렇지 않습니다. SK이노베이션에서 물적분할후 생긴 SK온은 프리IPO를 진행하면서도 "상장 계획은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국내 투자자들이 "제2의 반도체"라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성장할 SK온의 성장에 따른 열매를 향유할 '기회'조차 없는 것입니다. SK온이 말을 바꿔 혹시라도 상장한다고 하면, 이번에 대규모 자금유치에 참여한 외국계 투자사들만 큰 이득을 취할 수 있게 됩니다. 상장전 투자는 상장후 주식거래로 인한 투자보다 성공 확률이 급격히 높습니다.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투자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야 회사의 사정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성장이 확연히 보이는 산업의 글로벌 선두기업에서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기회를 아예 주지 않는 건 불공평해 보인다"(한 PEF 운용사 대표)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상식적으로 합당해 보입니다. SK온이 국내 자본시장의 발전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지만, 주변 상황을 모두 고려해 함께 가는 것도 좋아보입니다. 미국 대사도 한국에 그러잖아요. "Gachi Gapsida"라고.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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